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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름] [중앙일보] "착한 며느리가 되기 전에 나부터 먼저 챙기자"

작성자 : 관리자 I 작성일 : I 조회수 : 4276

[웹툰 '며느라기']




"마치 시가의 비정규직이 된 느낌이었다. 막말과 차별 대우가 만연하고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없는, 이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고군분투 중인 서러운 비정규직." (123쪽) 

  

명절이 돌아오면 언제나 고통받는 이들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의 '며느리'들이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졌다지만, 며느리들이 '독박 노동'을 하는 명절 풍경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이를 당연시하는 사회 인식 역시 마찬가지다. 

  

신간 『저도 남의 집 귀한 딸인데요..』(봄름)는 제목으로 예상할 수 있듯, 며느리가 시댁에서 겪은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시댁 식구나 남편과의 관계뿐 아니라 기혼여성이 사회에서 느끼는 여러 감정을 담고 있다. 카카오의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 브런치에서 100만 조회 수를 돌파하며 화제를 낳았던 작품이다.  


필명 '악아(惡兒)'를 쓰는 저자는 기꺼이 착한 며느리가 되길 포기했다고 선언한다. 가부장 제도라는 일그러진 현실 속에서 사랑받는 '아가'가 아닌 '악아(惡兒·나쁜 아이)'가 되길 자처한 것. 최근 중앙일보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저자는 "시댁에서 보통 며느리를 '아가'라고 부른다. 그 호칭을 들을 때마다 '착한 며느리가 되라'는 압박감이 들었다. 차라리 나에게는 '악아(惡兒)'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저자가 처음부터 '악아'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도 시댁에서 사랑스러운 '아가'가 되고 싶을 때가 있었다. 시댁 식구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그들에게 진심 어린 사랑을 받고 싶기도 했다. 

  

지난해 폭발적인 인기를 끈 웹툰 '며느라기'에도 비슷한 대목이 나온다. 작가 수신지 씨는 며느리가 시댁 식구한테 예쁨과 칭찬을 받고 싶은 시기를 '며느라기'라고 명명했다. 일반적으로 며느리들의 고통과 분노가 최고조로 증폭되는 시기다.  




[웹툰 '며느라기']


하지만, '며느라기'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돌아오는 것은 상처와 분노뿐이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시댁 풍경 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주방과 거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가사 분계선'이 굳건히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군사 분계선을 넘나들며 손을 맞잡는 시대에 대한민국 집구석에는 아직도 주방과 거실 사이, 남자와 여자 사이 보이지 않는 '가사 분계선'이 굳건했다. (202쪽) 

  

"사랑받으려 노력하던 시절, 나는 매일매일 다쳤다. (중략) 내가 혹시 잘못한 점은 없는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고민하며 상황을 되감았다. 상처받았던 상황을 곱씹으며 다시 또 화를 내고 참고 다치길 반복했다" (223쪽) 




[봄름 출판사]


결국 저자는 사랑받는 '아가'가 되길 포기했다. 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저자는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고, 예쁨 받기 위해 싫어도 참고하던 일을 그만뒀다. 그러자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며느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사랑받으려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충분히 행복한 결혼 생활을 그려갈 수 있다. 며느리 역할에 충실하기 전에 나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먼저다." (222쪽) 
  
최후의 수단으로 '악아(惡兒)'가 되길 자처하자, 뜻밖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한동안은 시부모님이 서운함을 표현하거나 질책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자신과 시댁 사이에 균형점을 찾고 나니 큰 다툼이나 문제가 없어졌다. 자연히 남편과의 사이도 좋아졌고, 훨씬 안정적이고 편안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게 됐다고 한다. 





[웹툰 '며느라기']



'악아'가 된 뒤로 시댁의 명절 풍경도 조금씩 바꿔나갔다. "꾸준히 시댁 식구들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남편을 주방으로 불렀어요. 처음에는 시부모님이 굉장히 언짢아하셨지만, 몇 년간 성실하게 해왔더니 이제는 남편과 함께 설거지하는 정도는 됐어요. 대단하지 않아도 조금씩 변하고 있으니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당장 모든 며느리가 파업할 수는 없지만, 가족이 함께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노력은 할 수 있다고 봐요." 
  
저자는 남편 역시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남편이 여성들이 겪는 '감정'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일부 남성들은 '설거지 좀 하고 음식 만드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냐'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노동의 양이 아니다. 모든 식구가 거실에서 얘기를 나누는 동안 홀로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아내의 감정이 어떤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봄름 출판사]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 세상의 수많은 며느리에게 "희생이나 인내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행복한 가정은 누구 한 명의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남의 집 귀한 딸인 며느리가 그 희생을 감당해야 하는 이유는 전혀 없다.  

물론 며느리가 희생하면 잠시나마 가정의 평화가 유지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관계는 위태롭고 언젠가 균형을 잃기 마련이다. 희생자가 아프지 않은 척 참고 있어도, 상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해서 깊어지고 언젠가 곪아 터지기 마련이다.   
  
저자가 책에서 역설하듯, 나만 참으면 모두가 행복한 게 아니다. 나만 참으면 '나를 뺀' 나머지 사람들만 행복하다. 며느리 노릇보다는 나 자신을 지키는 게 먼저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기사원문 : https://news.joins.com/article/23346625